남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다. 끝날 때쯤엔 내 이야기였다. 송희구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1권을 읽고 적은, 한 직장인의 솔직한 고해성사 같은 후기.

 

남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다. 끝날 때쯤엔 내 이야기였다.

 

먼저 밝혀두자면, 이 글은 어디까지나 1권을 읽고 쓴 글이다. 그런데 1권만으로도 할 말이 이렇게 많아질 줄은 몰랐다. 이 책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부장이 주인공이지만, 그 곁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온도로 살아간다. 그래서 읽다 보면 누구 한 명한테는 반드시 내가 겹친다. 무서운 건 그게 제일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일 때다.


 글은 점잖은 서평이 아니다. 읽으면서 부끄러워서 몇 번이나 책을 접었다 폈다 반복한, 일종의 고해성사에 가깝다. 당장 이  첫머리에 꺼낼 아내 이야기는, 솔직히 지금도 아내한테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는 바로 다음 문단부터 알게 될 거다.

 

가장 찔린 장면: 나는 아내를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제일 부끄러웠던 건 김부장의 회사 생활이 아니었다. 아내를 대하는 김부장의 태도였다.

김부장은 자기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아내를 대하는 장면들인데, 거기서 나는 멈칫했다. 처음엔 재미있어서 아내한테 권할까 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권할 수가 없었다. 아내가 '재밌네' 하고 넘길 사람이 아니라서다. 자기를 김부장 아내에게 투영할 거고, 거기서 올라올 감정이 너무 클 것 같았다. 아내는 TV에서 감정을 조금만 건드리는 장면이 나와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쓰나미처럼 다가올 거다.

 

아내는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계속 학원 선생님만 해왔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 회사 장면, 회의하는 장면, 발표하는 장면이 나오면 뭔가 동경하듯 궁금해하곤 했다. 안 해봤으니까 당연한 거다. 아이 같은 순수한 궁금증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순수한 궁금증을, 어느 순간부터 은근히 무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래 같이 살면서 '이 사람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내가 다 안다'고 멋대로 단정했던 거다. 그렇게 굴던 나를 정통으로 비춰준 게 김부장 아내였다. 부끄러우면서도, 어떤 의미에선 고마웠다.

 

그래서 이 책을 아내에게 권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못 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거다.

 

'그래도 나는 김부장은 아니지'라는 착각


나는 대기업을 다니지도 않고, 속으로는 '그래도 나는 김부장 같은 사람은 아니지'라고 애써 부정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김부장보다 못난 내가, 이 책이 보여주려는 것에 전부 공감하고 있었다.

 

김부장이라는 인물이 잘 만들어졌다고 느낀 지점이 여기다. 그는 또래보다 빨리 부장을 단 사람이라 자기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런데 그 자부심 바로 아래에 열등감이 깔려 있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집착하고, 남의 자식, 남이 타는 차, 남이 사는 집에 민감하다. 나도 남을 그렇게 평가하고 깔보다가, 정작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한없이 작아진다. 자부심과 열등감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그 묘사가 정말 정교했다. 나는 스스로 꽤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해 왔는데, 김부장의 그 양면이 나한테도 분명히 있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송과장을 보며 든 생각: 대기업이라 다행이었던 것

 

1권에서 송과장의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런데 짧게 스치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히 보인다. 일도 잘하고 재테크도 잘해서, 상사들까지 그에게 의견을 구하고 은근히 의존한다. 조용한데 다들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대기업이라 가능했던 건 아닐까. 큰 조직이니까 그나마 실력 있는 사람을 알아볼 여유가 있었던 거다. 만약 송과장이 중소기업에 있었다면? 진가를 알아보기는커녕 '쟤는 왜 저렇게 튀냐'며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먼저 왔을지도 모른다. 잘하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게 더 흔한 풍경이라는 건, 슬프지만 많은 사람이 겪어본 현실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웃프게 생각이 비틀린다. 아니, 애초에 송과장 같은 사람이 중소기업에 들어오기는 할까. 들어오지도 않을 사람을 두고 시기 질투를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혼자 피식 웃었다. 결국 사람을 알아봐 주는 환경이라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짧게 등장한 송과장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82년생, 꼰대와 MZ 사이에 낀 세대의 자기 변명

 

나는 82년생이다. 이제 회사에선 꼰대 축에 드는 나이다. 그래도 스스로는 꼰대도 이해하고 MZ도 이해하는, 중간에 낀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그 중간에 끼였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양쪽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결국 '나는 다 안다'는 또 다른 착각이지 않을까 싶다. 김부장이 아내를 두고 '내가 다 안다'고 했던 그 착각과, 내가 세대를 두고 '나는 양쪽을 다 안다'고 하는 것이 과연 다른 종류일까. 책을 덮고 나니 이 질문이 가장 오래 남았다.

 

80년대생은 90년대에 부모님과 선생님께 맞고 자란 마지막 세대다. 누가 그러더라, 낭만의 시대의 마지막 세대라고. 물론 반발하는 90년대생도 있을 거다. 그 마음도 이해한다. 다만 내가 굳이 80년대생으로 선을 긋는 이유가 있다. 나도 열 살쯤 위 선배들과 대화하면 대부분 벽을 느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가 그만큼 있더라. 그러면서도, 방금 한 그 말조차 또 하나의 선 긋기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사람은 참 끝까지 자기를 변호하는 존재다.

 

옆에 놈팽이 친구 하나쯤은, 사실 큰 자산이다

 

책에는 김부장 곁에 소위 '놈팽이' 같은 친구가 등장한다. 처음엔 그냥 웃긴 조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게 생각보다 깊은 의미였다.

 

이 친구는 김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뻔히 다 안다. 김부장이 그동안 자기를 속으로 어떻게 여겨왔는지도 모를 리 없다. 그걸 다 알면서도 묵묵히 옆에 있어 줬다. 왜? 그냥 친구니까. 잘난 척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곁을 지켜준 거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존재다.

 

생각해 보면 김부장은 주위 사람을 참 잘 뒀다. 정작 본인 속내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아닌데도, 곁에는 아내가 있고, 친구가 있고, 알게 모르게 그를 지켜봐 준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김부장이라는 인간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김부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내 속이 늘 반듯하진 못해도, 그런 나를 알면서도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존재인지. 이 책은 그걸 새삼 알아채게 해줬다.

 

가장 무겁게 남은 한 가지: 무시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1권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은 건 김부장과 그의 형님 이야기다.

 

김부장은 형님을 은근히 낮춰 본다. 자기보다 못 배웠고, 자기보다 못 가졌다고 여기니까. 그 태도가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읽다 보면 알게 된다. 그렇게 깔보던 형님이, 사실은 김부장이 갖지 못한 다른 종류의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적어도 1권을 덮을 때쯤엔, 이 형제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기서 거창한 교훈을 꺼내고 싶진 않다. 다만 단순한 사실 하나는 분명해졌다. 세상 누구도 무시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는 것. 지금 내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언젠가 내가 가장 기대게 될 사람일 수 있다. 김부장이 형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너지기 전에 그걸 알고 싶어서 이 장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래서, 이 책을 권하느냐

 

원래는 책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공감되는 게 너무 많아서였는지 어쩌다 보니 내 고해성사가 되어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아직 1권을 읽고 쓴 글이다. 1권만으로 이 정도다. 2권, 3권을 읽고 나면 또 어떤 부끄러운 고백을 적게 될지 벌써 좀 무섭다.

 

1권을 덮으며 가장 크게 남은 건 하나였다. 사람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산다는 것. 아내든, 친구든, 형님이든, 내가 별것 아니라 여기거나 다 안다고 단정했던 그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해 온 존재들이라는 것. 김부장은 그걸 잘 몰랐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 안 할 수가 없는 책이다. 나처럼 '나는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세게 찔릴 거다. 그게 이 책의 힘이다.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단, 마음의 준비는 좀 하고.

 

다음 글에서는 2권을 읽고 또 한 번 솔직하게 적어볼 생각이다. 김부장이,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더 부끄러워질 수 있을지. 그 고해성사는 2권 후기로 이어진다